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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 사도세자 / NETFLIX / 넷플릭스 실화 역사 영화

by 암기도우미 2022. 12. 5.

사도 영화 포스터
사도 영화 포스터

 

 

 

영조 역 : 송강호
사도세자 역 : 유아인
영빈 이 씨 (사도세자의 생모) : 전혜진
인원왕후 역 (영조의 어머니) : 김해숙
혜경궁 홍 씨(사도세자의 부인) : 문근영

개봉 : 2015년

감독 : 이준익

 

 

 

 

 

 

 

 

 

 

영조 38년 1762년, 영조가 사도세자를 죽인 임오화변을 토대로 한 실화 사극 영화.
이 영화로 사도세자 역을 한 유아인은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고,
그밖에 작품상 등 여러 상을 다수 수상한 완성도 높은 추천할 만한 역사 영화이다.

사도, 사도세자가 뒤주 갇혀 죽은 이야기

사도세자 칼을 들고 경희궁으로 향하다

관속에 들어가 누워있던 사도세자 숨 막히는 기분으로 일어나, 칼을 집어 들고 경희궁으로 향한다.

영조가 그날 밤 어린 세손과 그곳에 있었다. 이 사실을 알고 혜경궁 홍 씨는 영빈 이 씨에게로 가 이 사실을 고한다.
주상전하와 어린 세손을 위해 사도세자를 막아야 한다고 말이다.

 

실제로 사도세자는 칼을 가지고 아버지가 있는 경희궁으로 가는 중에 이런 식으로 얘기를 했다고 한다.

"칼을 차고 가서 어떻게 해버리고 싶다" 즉 아버지를 죽여버리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영빈 이 씨는 영화 속에서 처럼 영조를 찾아가 아들의 죄를 고했던 것이다.

영조, 아들에게 자결을 명하다

1762년 7월 4일.
사도세자의 생모 영빈 이 씨가 직접 어젯밤의 사도세자의 난동에 대한 참사에 대해 알리며, 사도세자에 현 상태가 주상을 해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얘기하며, 그래도 어미인지라 세자가 그러한 것은 마음의 병 때문이니 은혜를 베풀어

처분을 내려달라 부탁한다. 세손만은 보존하게 해 달라 청한다.
영조는 생모가 직접 그런 말을 한 것에 대해 심각하게 받아들이며 사도세자를 부르고,
영조 앞에 온 사도에게 관과 용포를 벗으라고 한다.
사도 안에 상복을 입은 상태를 보고, 아비를 죽이려고 상복까지 입었다고 말한다.
대비 마마와 중전 마마 초상 때부터 입었다고 말하고, 영조는 3년상 끝난 지가 언제인데 그 따위 변명을 하는가

호통을 친다.
영조는 사도세자에게 그간 궁궐의 후원에다가 무덤 파고 관 짜고 상복 입고 날 죽이려고 저주한 것 아니냐는 물음에,
전하께서 저를 죽은 사람처럼 취급하여 자기가 자기 무덤을 판 것이었다고 말한다.
영조는 사도세자에게 칼을 던져주며 자결하라고 한다.
"내가 죽으면 나라가 망하지만, 네가 죽으면 300년 종사는 보존된다."
이에 사도세자는 죽는 것이 두려운 듯 차라리 자신을 의금부에 넘기라고 하고,
영조는 이건 집안일이라고 한다. 아비를 죽이려고 한 자식을 처분하려 하는 거라고 얘기한다.
너 그렇게 죽으면 너의 이름은 잃지 않을 거라는 말에 자기를 언제부터 세자로, 자식으로 여기셨는가 울부짖는다.
이 모습을 어린 세손 (훗날 정조)이 닫힌 대궐문 사이로 보며, 아버지의 안위를 걱정하며 눈물을 흘린다.

이미 너무나 어긋나 버렸다.

이렇게 까지 어긋한 관계는 이미 돌이킬 수 없다. 서로 운명적으로 맞지 않은 사람들이 있는데, 만일 부모 자식

지간이라면 서로의 마음에 한이 서린다. 이들의 엇나간 마음이 서로에게 기인했겠지만 어차피 같이 할 수 없을

만큼 서로를 증오한다면, 좀 더 다른 방법을 모색해봤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미 세자와

왕이라는 관계가 있었기에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 상황에서 세자를 살려둔 상태에서 어린 세손에게 왕위를 물려준다는 것은 너무 불안정하고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기에 영조는 미치광이처럼 행동하는 세자를 죽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결국 뒤주에 들어가는 사도세자

결국 세자가 자결하려고 하는 것을 대신들이 몰려 들어와 막는 상황이 되어 영조의 처분대로 시행되지 못했다.
사도세자는 땅에다 자기 머리를 계속 박아대어 피가 흐르고, 영조는 모두 끌어내라고 하며 뒤주를 가져오라고 한다.
뒤주 속에 세자를 집어넣으라 명한다. 세자는 뒤주 속에 스스로 들어다. 영조는 못을 직접 박는다. 이 모습을 세손이

보고 뛰어들어가 아비를 살려달라 애원한다. 세손까지 뒤주 안에 들어가기 바라냐고 세손을 데려가라 호통을 치고,

뛰어 들어온, 대신이 세손을 안아 들고서 나간다. 이 무슨 비극인가.

뒤주속의 사도세자뒤주속의 사도세자를 확인하는 영조
뒤주속의 사도세자

뒤주 속에서 28살 생을 마감하다

뒤주에서 갇힌 며칠 만에 뛰쳐나와 연못으로 뛰어든다. 사도세자는 차라리 사약을 내리라고 소리를 지르고,

옆의 대신들은 이러면 세손까지 죽는다고 옆에서 말리고, 사도세자는 영조를 향해 아들과 손자 죽이고 천년만년

혼자 왕을 하라며 절규한다. 이를 본 영조는 다시 뒤주 안에 가두라고 명한다. 다시 잡혀 들어가는 세자는 거의 발작을

하고 지금까지 자신에게 한 짓을 생각해보라고 하고, 영조는 세자에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고 한다.
이번에는 뒤주를 밧줄로 묶고, 잔디 떼로 뒤주를 덮어버리기까지 한다. 더운 여름날 어떻게 저렇게 까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당시에는 영조는 사도세자를 진짜 빨리 죽여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뒤주로 세자의 개가 와서 슬퍼하며 짖는다. 주인이 죽어 간다는 것을 개가 인지를 한 것이다.
어린 세손이 물을 가져와 사도 세자에게 물을 먹이려고 하지만 이미 물을 받아먹을 기력이 없는 상태.
일곱째 날 밤 영조는 사도세자의 죽음을 확인한다.

서로 악연이었다.

사도세자와 영조의 처음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영조 나이 40이 넘어 힘들게 얻은 둘째 아들이었는데, 첫째 효장세자가 일찍 죽어 세자 자리가 비어 있는 상태에서 얻은 아이라, 그 기쁨이 매우 컸다고 한다. 태어나자마자 원자로 칭해지고, 조선시대의 최연소 세자에 책봉이 되었다.

영조가 늦은 시간까지 세자가 공부할 책을 직접 만들어 줄 정도로 기대가 컸었지만, 아이가 자라면서 자신이 의도한 방향이 아닌 다른 방향에 관심과 소질을 보이는 세자가 상당히 못마땅했던 것이다. 사도세자는 글공부보다 그림과 도교 경전, 무예 등에 심취하여 부모의 기대에 어긋나기 시작했으며, 영조는 아들의 외모조차 비하하며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리청정 중에도 계속해서 힐책과 책망을 하여, 자기 스스로 결정을 하지 못하게 했다. 그리하여 그는 매사에 자신 없어하고 쉽게 두려움을 느끼고, 헛것이 보이는 지경까지 가게 되었다.

심각한 의대증으로 옷을 제대로 입지 못하며, 옷을 찢거나 귀신이 있다며 태우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가까운 아랫사람을 살해하는 일도 비일비재 발생했다.

 

이에 영조가 왜 그리하였는지 차분히 묻자,

마음속의 울분 때문에 화가 치밀어 오르면 참지 못해 살생을 해야 마음이 풀립니다.

  영조가 다시 한번 더 묻자,

마음이 상하여 그러합니다, 부왕께서 사랑하지 않으시기에 서럽고,
꾸중하시기에 무서워 화가 되어 그러합니다.

  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에 영조는

내 이제 그러지 않겠노라.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사도세자의 마음의 병이 너무 깊었는지, 그의 살인행각은 끝나지 않고 계속되었으며, 100여 명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영조는 이를 묵인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를 공론화한다면 세자를 폐위시키고, 처형을 해야 하므로, 세자는 죄인이 되고, 세손이 왕위를 물려받는 것도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보면 실로 사사건건 아들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고 구박을 했던 것 같다. 사실 저 정도면 극단적인 생각을 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영조의 너무 일방적이고, 엄격한 모습에 아들이 정신병을 얻은 것 같기는 하다.

부모로서 좀 더 포용력 있게 사도세자에게 대하지 못한 일차적인 문제가 영조에게 분명 있었지만, 사도세자 자체도 많은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당시의 당파싸움에 의한 정치적 배경도 한몫을 한 것 같고, 영화 속에서 사도세자의 죽음을 확인한 후 영조가 한 말처럼 영조와 사도세자의 운명인 것이다.

아버지 영조와 대신들의 생각처럼 사도세자는 그 상태에서 왕이 되었다면 폭군이 되었을 것이다. 사람의 타고난 기질과 성격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고쳐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므로, 왕위를 바로 세손에게 물려주기로 한 것은 영조의 올바른 선택이었던 것 같다.

세자의 마음속 응어리는 충분히 이해하겠으나, 아무리 자신의 아랫사람들이라도 아무런 명분 없이 그런 식으로 가축의 생명을 해하듯 살인을 하고, 영조와 생모에게 죽음의 위협을 가하는 등 그의 여러 만행은 어떤 이유에서든 받아들여질 수 없는 부분이다.

   영조가 그렇게 엄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영조의 생모가 미천한 무수리로서 본래부터 왕위 계승과는 거리 멀었던 영조는 철저한 자기 관리로 왕이 되었고, 평생 자기의 태생에 대한 콤플렉스와 불안감을 안고 살아야 했다.

그랬기에 아들에게 바라가 바가 컸었지만, 자신이 바라는 모습과는 다른 모습으로 성장해 가는 아들에게 강한 실망감을 느꼈던 것이다.

     실제 세자의 병

대리청정을 하고 난 후 영조와 갈등으로 더 병이 깊어진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경계증, 천둥, 벼락 소리를 무서워하는 뇌벽증, 옷차림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의대증,

헛것을 보고, 살인이나 자살을 시도

     사도세자 실제의 만행

생모인 선희궁 (영빈 이 씨)도 몇 번이나 죽이려 위협을 가했다.
아랫사람들을 100여 명이나 살인하고, 잔인한 형벌을 내려 고문을 했다고 한다.
여러 궁녀와 기생, 여승과 관계를 맺는 등 방탕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영조에게 1년 가까이 문안 인사를 올리지 않기도 했다고 했다고 한다
갑자기 의대증이 발병해서 자신이 좋아하던 후궁인 귀인 박 씨도 때려죽인다.

     왜 뒤주였나?

세손을 죄인의 자식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공식적이고 정식적인 처벌은 피하여 사도세자를 제거해야 했다.

     꼭 죽여야 했나?

사도세자가 임금이 된다면 폭군이 될 거라 여겨졌기 때문에, 신하와 임금은 세자 자리가 교체되기를 원했다.
사도세자가 살아있는 상태에서 어린 세손이 세자가 된다면, 나이 많은 영조가 죽은 후, 다시 복귀할 가능성이 너무 크기 때문에 훗날을 위해서도 꼭 죽여야 했다.

     사도세자의 운명이었다.

을묘년 무인월 임진 일주로 편관과 식, 상관이 강한 사주다.
신약 사주이기에 과도한 식상관과 편관 기운이 기신으로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본인한테 불리한 기운이라는 것이다.

 

남자 사주의 편관은 자식을 의미하기도 한다. 실제로 그의 인생을 대조해 봤을 때 이 부분이 상당히 들어맞는다.
그에게 아들이 태어나지 않았을 때는, 그가 아무리 잘못한들 대처방안이 없기 때문에 영조는 그 상황에서 어느 정도

타협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손자가 태어나고 나서 영조에게는 대처방법이 생겼고, 사도세자는 존재 여부가 불필요하게 되었다.

 

편관은 나를 극단적으로 극하는 기운이기에, 내가 그 기운을 쓸 정도로 강하지 못하다면,

자신이 그 기운에 짓눌리게 된다. 편관의 기운 때문에 그가 무예를 즐겼던 것 같다.


식신과 상관은 자신의 기운을 설기 시킨다.

그가 그림 그리기 등을 좋아한 것도 이런 식상관 기운 때문이었던 것 같다.
식신과 상관 기운은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 예술성을 나타내고, 식성이 좋아 먹는 걸 즐기게 된다.

이렇듯 타고난 성향으로 아이가 그 분야에 좀 더 치중한 것뿐인데, 영조의 눈에는 그런 것이 학문을 게을리하고

군주의 덕망 쌓는 것에 소홀히 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영조가 이런 역학에 대해 참고했더라면 자신의 자식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었을 거라 여겨진다.

 

태어난 시는 정확하지 않아 제외시키고, 저렇게 사주팔자 중에 삼주만 놓고 본다면, 전부 자신을 심하게 극하거나,

자신의 기운을 설기 시키는 걸로만 구성이 되어있다. 실제로 정신적으로 상당히 힘들었을 것이다.

더구나 아버지 영조의 사주도 아들에게 우호적이지 않는 사주다 보니, 저 지경까지 가게 되지 않았나 싶다.

 

각 사주의 일주만을 놓고 일단 보면,

임진과 무인을 놓고 볼때 역학의 기본 지식만 가지고 있어도, 무인이 임진을 극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인의 무는 건조한 흙이고, 인은 범의 날이고, 오행상 큰 나무로 본다.

임진의 임의 큰 물이고, 진은 용의 날이고, 젖은 흙 기운으로 본다. 
역학에 서는 보통 물을 극하는 것은 흙이다, 흙을 극하는 것은 나무로 본다.
이 이론을 대입해 보면 영조의 천간 무는, 사도세자의 천간임을 극하고, 
영조의 지지 인은 큰 거목이므로, 사도세자의 지지의 기운, 젖은 흙을 극한다.
이것이 사도세자의 사주내의 월주(무인 월주)에 이미 자리잡고 있어 극을 당하고 있는데,
영조의 일주도 그 월주와 공교롭게도 같은 일주가 되어, 그 극을 당하는 고통이 가중이 된 느낌이다.

 

배우자 자리는 일주의 아래 지지를 보통 기본으로 보는데, 배우자 복도 없는 사주다.

그렇지 않아도 여기저기 힘을 빼주고 극을 다해 힘겨운 상태에서 자신을 입묘 시키기 때문이다.

나의 얇은 지식으로 대충 훑어보아도 그의 인생과 일치한다.

그가 뒤주 안에 갇혀서 죽었을 때도 그때 걸쳐진 대운(10년간의 운)이 좋지 않았다.
악운이 겹쳤었고, 본인이 아무렇지 않게 죽이고 고문한 사람이 100여 명이라는 악업도 지었기에,
그리 젊은 나이에 처참하게 죽었다고 생각한다.

사도세자가 만일 다른 날에 태어났던지, 영조가 그런 사주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좀 다른 인생을 살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영조의 자식으로, 그날에 태어난 것은 이미 불행이 예정되어 있었다고 본다.

이렇듯 우리에게 운명은 잔인하다.

사도 메인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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