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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넷플릭스 & TV

올빼미 / the night owl / 미스터리, 스릴러, 사극 / 박스오피스 1위

by 암기도우미 2022. 11. 25.

올빼미 영화 포스터 2
올빼미 영화 포스터

올빼미 ( 박스오피스 1위 )

장르 : 궁중 미스터리, 스릴러, 사극

개봉 : 2022년 11월 23일

인조 역 : 유해진

경수 역 : 류준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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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인 침술사, 궁으로 들어가다

때는 인조가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이 된 시점.

맹인이지만 뛰어난 침술사 경수 (류준열)은 맥을 짚지 않고 소리만으로 진단을 내리고 치료를 하자,
어의 이형익에게 능력을 인정받아 궁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 무렵 청에 볼모로 끌려갔던 소현세자(김성철)가 8년 만에 귀국하게 된다.

이런 아들의 귀환이 반갑지만은 않은 인조.

세자의 어의 이형익의 조수는 경수로서 세자의 침술사가 된다.

한밤중 이미 이형익은 퇴궐한 상황에서 세자가 격한 기침이 계속된다는 상궁의 부름에 경수가 치료를 하게 된다.

세자는 자신의 병을 고칠 수 있겠냐고 경수에게 묻고, 그런 물음에 경수는 자기는 그저 침의 일뿐이라며 얘기하며,

세자에게 몸이 너무 경직되어 있으니, 몸과 마음의 짐을 덜어내라고 조언을 올리게 된다.

둘은 서로에 대한 좋은 느낌을 가지며, 소현세자는 경수의 침술을 칭찬하게 된다.

소현세자는 이에 아주 흡족해하며 벌써 기침이 잦아드는 것 같다며, 창문을 열라고 하고 밖에서 불어온 바람에
순간 촛불이 꺼지고 경수의 눈은 보이기 시작하고, 이를 소현세자는 눈치채게 된다.

경수는 어두운 곳에서는 밝은 곳에서보다 더 잘 보이는 주맹증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경수는 사실을 고하고 용서를 빌게 된다.

세자는 자신의 병을 어떻게 해야 할지 묻으니, 때로는 눈감고 사는 더 이로울 때가 있다는 얘기를 하게 된다.

차츰 세자의 병세는 호전되어 갔다.

세자 갑자기 사경을 헤매다

어느 날 세자는 갑자기 쓰러지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이에 경수는 그와 세자만이 알고 있는 비밀스러운 통로로 재빠르게 달려가 보는데, 그는 세자의 암살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경수는 다급히 도망을 가던 중 경첩에 긁혀 상처를 입게 되고, 그의 뒷모습을 이형익 어의와 관졸들에게 들키게 된다.
세자의 죽음으로 궐내의 모든 사람들이 소집이 된다.

내의원에 있던 서망초를 썼을 때와 저하의 증상이 똑같다며, 세자의 독살범으로 내의원들이 의심을 받게 된다.
이형익 어의는 세자의 처소에서 창문을 넘어 도망가는 놈을 봤다고, 인조께 아뢰었고 이어 경첩에 피가 묻어 있었다고 사건 현장을 조사한 수사관이 얘기하게 된다. 이에 상처를 입고 도망친 자가 세자를 독살한 범인이 되는 상황이었다.
인조는 모든 문을 잠그고, 몸에 상처가 난 자를 잡으라는 명을 하게 된다.

과연 맹인 경수는 자기가 본 진실을 얘기할 수 있을까?

소현세자의 의문스러운 죽음을 둘러싼 역사적 사실과 주맹증을 앓고 있는 맹인 침술사라는 상상의 인물을 접목해서 만든

궁중 미스터리 스릴러 드라마.

영화의 배경이 되는 역사적 사실

소현세자 독극물에 중독되어 사망

실제로 소현세자는 청에 볼모로 8년간 잡혀 있다가, 조선으로 귀환한 지 2달 만에 사망하게 된다.

공식 사망원인은 학질이라고 하며 걸린 지 3일 만에 사망했다고 한다.

본래 그때 당시 조선의 학질이라는 병은 치사율을 매우 낮은 편이었고, 젊은 나이에 학질에 걸려 3일 만에 사망했다고 하는 것은 객관적으로 볼 때 일어나기 힘든 경우라고 한다.

더욱이 그의 죽은 후의 상태는, 마치 독극물에 중독되어 사망된 것과 비슷했다고 한다.

인조실록 23년 6월 27일의 구절에 기록된 바에 의하면,

"온몸이 전부 검은빛, 눈과 귀, 코, 입에서 모두 선혈이 흘러나왔다. 마치 약물에 중독되어 죽은 사람 같았다."

    라고 묘사되어 있다.

소현세자의 죽음에 인조가 가담

거의 독살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인조는 조사를 명하지 않았다고 한다. 소현세자의 담당 어의 이형익은 소용 조 씨의 천거로 어의가 된 사람이었다고 한다.
소용 조 씨는 인조의 남다른 총애를 받고 있었고, 이에 대해 실록에는

"조 씨가 패악 무도하고 성품이 간사하여 왕의 총애를 믿고 자신이 싫어하는 이들을 모함했다."

    는 기록도 있다.


소용 조 씨는 인조에게 소현세자의 부부를 틈만 나면 모함했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이형익을 국문하여 세자의 죽음에 대해 책임을 묻고 사실을 밝혀야 한다고 했지만, 인조는 국문을 할 필요가 없다며 그냥 넘어갔다고 한다.

장례의 절차도 극도로 축소되어 3일장으로만 하고, 1년 입는 상복도 3개월만 입도록 했다고 한다.
인조 자신은 7일 만에 벗었다고 한다. 묘도 일반적인 왕족이나 다른 세자들의 무덤과는 달리, 사대부의 묘처럼 축소하여 가파른 언덕에 안치되었고, 세자의 무덤에 붙여지는 칭호도 제대로 붙여 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세자의 죽음에 대해 조사를 하고 있던 세자빈 강 씨를 폐출하고, 사사했다고 한다. 강 씨의 죄가 드러남이 없고 단지
추측만으로 법을 집행하였기에 당시의 민심이 수긍하지 않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소현세자의 세 아들을 전부 제주도로 유배를 보내 두 아들이 죽었다고 한다.
소현세자가 죽은 후 인조의 여러 조치들을 보았을 때 소현세자의 죽음에 인조가 관여했다는 의심이 든다.
그 당시 많은 백성들도 그리 생각했었던 것 같다.

왜 아들을 죽였는가?

1636년 인조 14년에 병자호란의 패배로 청나라로 인질로 가게 된 소현세자는 긴 불모 생활 동안 처음에 가졌던 청에 대한 반감을 거두고, 차츰 자기가 보고 배운 것을 토대로 이를 조선의 실질적인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삼으려고 했던 것 같다.

외국의 과학적인 문물과 철학, 종교 등을 접하게 되고, 무너져 가는 명나라의 멸망을 가까이 보면서, 당시 조선의 외교적 대처 방향을 바꾸고, 백성과 국가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만한 기술과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느꼈던 것이다.

청나라는 볼모로 와 있는 세자에게 공급할 식량 대신에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을 주었으며, 세자는 이를 이용해 농사를 지어, 그 곡물로 장사를 하게 된다. 그는 청과 교류하며 인맥을 넓혀 갔는데, 이런 세자의 행동은 조선에서는 배신의 행위로 보였고, 인조는 그런 세자를 감시하기 위해 첩자까지 보냈다고 한다.

중립외교를 고수하던 광해군을 몰아내고, 명을 섬기는 사대의 명분으로 반정을 일으켜서 왕위에 오른 인조와 대신들은 명나라와의 관계를 포기할 수 없었다. 자신의 집권의 정통성 때문이기도 했고 병자호란(1636) 때 청으로부터 당한 삼전도의 굴욕으로도, 청나라와의 관계 개선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청은 조선의 친명배금 정책 (조선 인조 때 명나라를 중시하고 청나라를 멸시한 정책)으로 조선을 신뢰할 수 없었으며,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왕을 세우고 싶어 했고, 이에 인조는 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세자에게 강한 배신감과 최대의 정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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